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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우리 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한글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 모태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는 이들의 노력으로 시작된 '가갸날'이었는데요.

100년 전 첫발을 뗀 '한글날'의 역사를 강진원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기자]
3·1 운동에 놀란 일제가 이른바 '문화 통치'라는 미명 아래 교묘하게 억압 수위를 높여가던 1926년 11월 4일.

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조선어연구회' 소속 학자와 지식인들이 경성 식도원에 모였습니다.

'음력'으로는 그해 9월의 끝날, 29일이었습니다.

세종 28년 9월, 훈민정음이 이뤄졌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글날의 효시, '가갸날'을 만든 겁니다.

가, 갸, 거, 겨, 고, 교….

우리 글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던 음절에서 이름을 딴 '가갸날'은 단순한 '문자 기념일'이 아니었습니다.

[윤지현 /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 :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또 한글을 보급하고, 이런 활동이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시고….]

한(韓)나라, 즉 우리나라 글이란 뜻 등을 지닌 '한글'이란 명칭은 1927년 조선어연구회가 잡지 [한글]을 펴낸 뒤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1928년부터는 '가갸날'의 이름도 '한글날'로 바뀌었습니다.

일본어 사용을 강요받던 일제 강점기, 한글날은 우리글 보급과 연구, 그리고 문맹 퇴치 운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터진 이후 더 거세진 일제의 탄압에 1937년부턴 기념식조차 열지 못했습니다.

[김주원 / 한글학회 회장 : 창씨개명을 통해 조선 민족의 씨를 없애겠다랄까, 이런 게 본격적으로 시작됐거든요.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말 큰 사전을 만들던 그 학자들, 사전 편찬원들이 다 감옥에 잡혀갔어요.]

1945년 광복과 함께 다시 빛을 본 한글날은 이보다 5년 앞서, 지금과 같은 10월 9일로 바뀌었습니다.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 작성 시점이 '정통 11년 9월 상한', 그러니까 '세종 28년 9월 상한'으로 적힌 게 근거가 됐습니다.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1446년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훈민정음 반포일'로 본 겁니다.

이후 지난 2005년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승격된 한글날은, 2013년 공휴일 ... (중략)

YTN 강진원 (jinw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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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를 기념하고 우리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한글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00:07그 모태는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려는 이들로 노력으로 시작된 각야날이었는데요.
00:14100년 전 첫발을 뗀 한글날의 역사를 강진원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00:213.1운동의 논란 일제가 이른바 문화통치라는 미명 아래, 교묘하게 억압수위를 높여가던 1926년 11월 4일.
00:31주시경 선생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조선어 연구회 소속 학자와 지식인들이 경성식도원에 모였습니다.
00:39음력으론 그해 9월의 끝날 29일이었습니다.
00:43세종 28년 9월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는 세종실록의 기록을 근거로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한글날의 효시, 각야날을 만든 겁니다.
00:57각야, 거겨, 고교.
01:00우리 글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던 음절에서 이름을 딴 각야날은 단순한 문자기념일이 아니었습니다.
01:07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 또 한글을 보급하고 이런 활동이 민족 정체성을 지키는데 이제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라고 이제 판단을 하시고
01:18한나라, 즉 우리나라 글이란 뜻 등을 지닌 한글이란 명칭은
01:231927년 조선어 연구회가 잡지 한글을 펴낸 뒤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01:311928년부터는 각야날의 이름도 한글날로 바뀌었습니다.
01:36일본어 사용을 강요받던 일제강점기, 한글날은 우리글 보급과 연구, 그리고 문맹퇴치 운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01:45하지만 중일전쟁이 터진 이후 더 거세진 일제의 탄압에 1937년부터는 기념식조차 열지 못했습니다.
01:52창시 개명을 통해서 조선민족의 시를 없애겠다랄까 이런 게 본격적으로 시작이 됐거든요.
02:00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조선말 큰사전을 만들던 학자들, 사전 편찬원들이 다 감옥에 잡혀갔어요.
02:091945년 광복과 함께 다시 빛을 본 한글날은 이보다 5년 앞서 지금과 같은 10월 9일로 바뀌었습니다.
02:18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헤레벌의 서문 작성 시점이 정통 11년 9월 상한, 그러니까 세종 28년 9월 상한으로 적힌 게 근거가 됐습니다.
02:32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1446년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해 훈민정음 반포일로 본 겁니다.
02:40이후 지난 2005년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승격된 한글날은 2013년 공휴일 지위까지 되찾으며 100년의 발자취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02:51YTN 강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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