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4위 주제입니다. 김신조 씨입니다. 작년에 돌아가죠.
00:071968년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에 습격을 시도한 김신조 사건 이후 58년 만에
00:12오늘 북악산 판방로가 전면 개방됐습니다.
00:176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개방을 해왔는데 마지막 남아있는 청와대 뒤편 산자락까지 누구나 걸을 수 있게 됐습니다.
00:26탐방로가 열리는 현장의 모습 먼저 확인하겠습니다.
00:30영상으로 같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적일입니다.
00:33적일로 쭉 올라가면 북악산을 올라갈 수 있게 되고요.
00:36청와대나 저 멀리 남산 등이 내려다보이는 아주 풍경이 좋은 장소가 연출이 됩니다.
00:45백악의 길이 하나로 서울의 풍경이 새롭게 열립니다.
00:49오늘 오전 9시부터 전면 개방됐습니다.
00:53적일이 막히게 된 건 김신조 사건 때문이었죠.
00:59경치가 좋습니다.
01:00단풍이 들면 더 멋있을 것 같습니다.
01:03적일로 올라가면 누구나 갈 수가 있습니다.
01:07임주혜 변호사 나오셨는데 사실 적일이 1, 2일 사태라고 하죠.
01:15김신조 사건.
01:16지금도 거기에 소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01:19지금 보면 제가 색깔로 표현했습니다만
01:213단계, 2단계, 1단계
01:25오늘 마지막에 있었던 이 1.32km 구간
01:28여기가 개방이 된 겁니다.
01:31당시에 1, 2일 사건, 1968년에 있었던 김신조 사건.
01:35북한에서 정말 1시간에 10km를 뛰어내려오는 엄청난 속도로
01:40청와대 뒤편까지 접견해서 거기서 교전이 일어났던 그 사건인 거죠.
01:44맞습니다.
01:45청와대 500m 앞까지 코앞까지 북한 특수공장원들이 침투했던
01:50정말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01:52당시에 많은 국민들이 정말 혼란을 금치 못했던 상황이었는데요.
01:58이 북악산이 청와대 바로 뒤편입니다.
02:00워낙 아름답고 경관이 수려하지만
02:0368년도 1월 20일 김신조의 침투 사건 이후로
02:07사실 전면 폐쇄가 됐습니다.
02:10안보 문제와 또 당시에 북한과 대한민국이
02:13굉장히 첨예하게 대립했던 그런 상황에서
02:16이 무장공비 침투 사건, 이 북악산을 전면
02:20폐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는데요.
02:22오늘 이 북악산이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02:26단계적으로 개방이 이루어졌는데
02:28오늘 개방된 곳이 이제 마지막 구역 바로
02:32이 1, 2일 소나무라고 하죠.
02:34당시에 교전이 펼쳐져서 총탄이 그스란히 남아있는
02:37이 1, 2일 사태 소나무까지
02:39이 3단계 개방 1.32km까지 이제 국민들에게 개방이 된 겁니다.
02:44워낙 경관이 수려하고요.
02:46저소나무입니다.
02:4715발의 총알이 그대로 남아있는
02:50이곳에서 사실 경치를 내려다보면
02:52이 북한산, 북악산 자락에서
02:55청와대뿐만 아니라 광화문까지
02:57한눈에 그 경강이 들어옵니다.
02:59많은 분들이 또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면서
03:02이곳 산책과 등산을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03:04당시 무장공비가 31명이었습니다.
03:08유일한 생존자 김신조 씨.
03:11체포 당시의 모습을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03:1368년으로 돌아가보시죠.
03:16기본 훈련은 이제 특수훈련인데
03:20유술하고 이제 격술이 좀 많이 했습니다.
03:22유술하고 격술.
03:24그 다음에 그 다음 권투훈련도 많이 했습니다.
03:27딱 하려고 했는데 이게 안 되더라고.
03:29내가 여기서 왜 젊은 나이에 내가 목숨 끊어야 되느냐.
03:33그래서 그냥 또 이제 또 나오면 살려준다 그러더라고.
03:38그러니까 그때 순간에는 그냥 이제
03:40그냥 수류탄 이 땅에 놓고서 손 들고 나가는 거예요.
03:45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러 한국에 왔다라고
03:51사실 더 심한 말을 했습니다만
03:53제가 순화해서 그렇게 얘기를 하겠는데
03:55안지훈 기자 그것 때문에
03:56당연히 안방을 내줄 뻔했던
03:59아주 일축축발의 위기 상황 아니겠습니까?
04:03그래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04:05실미도 부대를 창설했다고요?
04:07네 맞습니다.
04:08반공에 대한 국민적인 열망이 굉장히 커지면서
04:12그 당시에 이제 실미도 부대가 창설이 되게 됐던 거였죠.
04:15684 부대라고 불렸는데 그 당시에 31명이 내려왔다가
04:20한 명은 붙잡히고 한 명은 도주했죠.
04:2329명은 사살됐습니다.
04:24여기에 맞선다는 측면으로 마찬가지로
04:2731명을 또 착출을 해서 이들에게 특수 훈련을 시켰다는 거죠.
04:31실제로 이들은 이제 김일성의 목을 따겠다.
04:34이런 식의 일념과 또 슬로건을 갖고서는 계속적으로 훈련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고요.
04:40당시 이 부대의 창설부터 관리까지 정부가 주도했다는 것이 훗날 밝혀지기도 했었습니다.
04:46이는 나중에 영화를 통해서 또다시 한번 만들어진 적도 있었는데
04:49그 당시 유족들이 이에 대한 명예훼손을 또 제기할 정도로 굉장히 예민한 사건이었기도 했는데
04:54방금 말씀드렸던 이 김신주의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이 바로 이 684부대 실미도 영화의 근거가 됐던 그 부대가 창설되는 근거가 된
05:04겁니다.
05:04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바로 뒤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죠.
05:13곧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가안보체계를 개편했었는데 그중 하나가 향토예비군이었습니다.
05:21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05:28여러분은 일하며 싸우고 싸우며 일하는 향토 방위의 전사가 될 것을 조국과 민족 앞에 엄숙히 선서했습니다.
05:41내 나라는 내 힘으로 내 고장도 내 힘으로 방위하겠다는 국방의 결의와 각오를 중회에 선포함으로써
05:51김일성 집단에게 침략의 야욕을 포기할 것을 겨련히 요구한 것입니다.
05:59얼마나 그때 당시에 위급했냐면 향토예비군이 창설됐고요.
06:05군 복무기간도 연장이 됐어요.
06:07육군이 3년, 해군과 공군이 3년 6개월 복무기간이 됐고요.
06:11육군 3사관학교 설립이 추진됐고 광화문에 이순신 장군 동상도 건립됐습니다.
06:18북악스카이웨이가 조성됐고요.
06:19그리고 주민등록증 제도가 도입됐습니다.
06:22자, 주민등록증 이때 당시에 도입이 됐다고요?
06:26자, 임종일 의사 어떤 내용이에요?
06:27그렇죠. 주민등록증이 그 이후에 도입이 된 겁니다.
06:30주민등록증이 왜 필요한 것인가?
06:33우리 국민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편리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06:39이때 만들어진 주민등록증 제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번호를 보면 조금 다릅니다.
06:45지금은 생렬월인과 특수조합을 활용해서 13자리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06:49당시에 처음 주민등록증을 발급했을 때 번호는 12자리였습니다.
06:55그리고 생렬월인이 아니라 주민등록지 동사무소 숫자 코드를 적용했기 때문에
07:01지금과는 다른 번호였다가 이후에 생렬월인을 조합해서 일괄 변경이 되었습니다.
07:07처음으로 주민등록증 1호를 발급받은 사람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고요.
07:142호로 발급받은 사람은 유경수 여사였습니다.
07:16이 번호 조합을 보자면 종로 자아 동사무소에서 발급이 되었는데
07:21이 앞에 이 동사무소 코드 그리고 위에 번호가 연관되는 그런 번호여서
07:27지금과는 사뭇 다른 번호 조합이었습니다.
07:30당시에 얼마나 위급했으면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07:35하지만 그 얘기도 역사적으로 사라지게 됐고
07:39역사 속으로요.
07:40그 공간이 국민 시민들에게 개방이 됐습니다.
07:45다음 주에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