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분 전
- #2424
■ 진행 : 김선영 앵커, 정지웅 앵커
■ 출연 :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NOW]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배우 최불암 씨가 오늘 많은 동료 배우들의배웅 속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관련 내용안진용 문화일보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했습니다. 장례미사가 있었는데 팝페라 테너 임형주 씨가 아베 마리아를 불렀는데 개인적인 친분도 있다고요?
[안진용]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했고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임형주 씨가 아베 마리아를 불렀습니다. 사실 최불암 씨보다는 아내인 김민자 씨와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 그후에 부부가 함께 임형주 씨의 공연을 자주 보러 갔다는 거죠. 그래서 평소에 최불암 씨를 이모부라고 불렀었고 이런 인연으로 아베 마리아를 부르면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습니다.
고별행사가 이제 초록우산본부에서 열렸는데 이곳이 생전에 최불암 씨와 인연이 많이 있었던 그런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안진용]
처음에는 사람들이 놀랐어요. 왜 초록우산재단장으로 장례를 지낼까 생각을 해 봤는데 본인이 가장 공을 들였던 곳이었던 거죠. 왜 그런 얘기를 했냐. 이분이 항상 얘기한 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건데 본인의 대표작이 전원일기였죠. 거기의 막내아들 금동이를 기억하실 겁니다. 금동이가 전원일기에서 시골 시장에서 구걸을 하다 입양한 아이거든요. 그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때부터 방송국으로 엄청난 팬레터가 온 거죠. 정말 장한 일을 했다. 그런데 그때 느낀 겁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극중 행동인데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아 그때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일을 했는데 45년 동안 후원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가는 그 순간에도 내가 이곳에 가서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뜻으로 반드시 이곳을 지켜달라고 했고 그래서 이곳에서 노제가 진행된 겁니다.
배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누구보다 고민했던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 연예인들이 일회성 기부를 많이 하지만 이렇게 수십 년간 나눔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는 것도 다른 거... (중략)
YTN 정유진 (yjq07@ytn.co.k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3_202611021258387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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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 출연 :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NOW]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배우 최불암 씨가 오늘 많은 동료 배우들의배웅 속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관련 내용안진용 문화일보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수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했습니다. 장례미사가 있었는데 팝페라 테너 임형주 씨가 아베 마리아를 불렀는데 개인적인 친분도 있다고요?
[안진용]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했고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임형주 씨가 아베 마리아를 불렀습니다. 사실 최불암 씨보다는 아내인 김민자 씨와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 그후에 부부가 함께 임형주 씨의 공연을 자주 보러 갔다는 거죠. 그래서 평소에 최불암 씨를 이모부라고 불렀었고 이런 인연으로 아베 마리아를 부르면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추모했습니다.
고별행사가 이제 초록우산본부에서 열렸는데 이곳이 생전에 최불암 씨와 인연이 많이 있었던 그런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안진용]
처음에는 사람들이 놀랐어요. 왜 초록우산재단장으로 장례를 지낼까 생각을 해 봤는데 본인이 가장 공을 들였던 곳이었던 거죠. 왜 그런 얘기를 했냐. 이분이 항상 얘기한 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건데 본인의 대표작이 전원일기였죠. 거기의 막내아들 금동이를 기억하실 겁니다. 금동이가 전원일기에서 시골 시장에서 구걸을 하다 입양한 아이거든요. 그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때부터 방송국으로 엄청난 팬레터가 온 거죠. 정말 장한 일을 했다. 그런데 그때 느낀 겁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극중 행동인데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아 그때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일을 했는데 45년 동안 후원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가는 그 순간에도 내가 이곳에 가서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뜻으로 반드시 이곳을 지켜달라고 했고 그래서 이곳에서 노제가 진행된 겁니다.
배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누구보다 고민했던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 연예인들이 일회성 기부를 많이 하지만 이렇게 수십 년간 나눔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는 것도 다른 거... (중략)
YTN 정유진 (yjq0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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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트랜스크립트
00:00배우 최불암씨가 오늘 많은 동료 배우들의 배웅 속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00:04관련 내용 안진영 문화일보 기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00:08어서오세요.
00:09안녕하세요.
00:10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수많은 문학의 인사들이 함께했습니다.
00:14장례 미사가 있었는데 파페라테너 이명주씨가 아베마리아를 불렀는데
00:21좀 개인적인 또 친분도 있다고요.
00:24네, 염수정 추기경이 집전을 했고
00:27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명주씨가 아베마리아를 불렀습니다.
00:30사실 최불암씨보다는 아내인 김민자씨와 깊은 인연이 있었는데
00:34그 후에 부부가 함께 이명주씨의 공연을 자주 보러 갔다는 거죠.
00:38그래서 평소에 최불암씨를 이모부라고 불렀었고
00:41이런 인연으로 아베마리아를 부르면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주모했습니다.
00:46고별 행사가 이제 초록우산 본부에서 열렸는데
00:48이곳이 이제 생전에 최불암씨와 좀 인연이 많이 있었던 그런 곳으로 알려져 있어요.
00:54네, 처음엔 사람들이 좀 놀랐어요.
00:55왜 초록우산 재단장으로 장례를 지낼까 생각을 해봤는데
01:00본인이 가장 공을 들였던 곳이었던 거죠.
01:03왜 그런 얘기를 했냐.
01:04이분이 항상 얘기한 게 어린이에게 희망을 줘야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건데
01:08본인의 대표작이 전원일기였죠.
01:10거기에 막내 아들 금동이를 기억하실 겁니다.
01:12사실 금동이가 전원일기에서 시장에서 구걸하다 입양한 아이거든요.
01:18그 아이를 입양했는데 그때부터 방송국으로 엄청난 펠레토가 온 거죠.
01:21정말 장한 일을 했다. 그런데 그때 느낀 겁니다.
01:25최불암씨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극중 행동인데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01:29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아. 그때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일을 했는데
01:3445년 동안 후원을 했습니다.
01:36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가는 그 순간에도
01:38내가 이곳에 가서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라는 뜻으로
01:42반드시 이곳을 지켜달라고 했고
01:45그래서 이곳에서 노제가 진행된 겁니다.
01:47배우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누구보다 고민했던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드는데
01:53연예인들이 일회성 기부를 많이 하지만
01:57이렇게 수십 년간 나눔을 꾸준히 실천해왔다는 것도 다른 거잖아요.
02:02저는 정확한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는 게 개인적으로 큰 금액의 기부도 중요하지만
02:06저는 그 기부의 진정성은 기간이라고 봅니다.
02:08얼마나 오랫동안 자신이 헌신해서 일을 해왔는지 이 부분인데
02:13최불암씨는 45년 동안 이곳의 후원회장을 맡아서
02:17한 번도 이걸 내려놓은 적이 없었습니다.
02:19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마지막까지 모든 힘을 다해서 도와주려고 했고
02:25그렇기 때문에 이 재단을 본인이 이 세상을 떠나기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장소로
02:30미리 생전에 얘기를 했던 겁니다.
02:32주말 내내 이제 많은 연예인들이 최불암씨 배우의 빈소를 이제 찾았는데요.
02:38전원일기 그러니까 양촌리 가족부터 60년 지기까지
02:42최불암 배우를 기억하는 동료 배우들의 이야기를 저희가 직접 좀 듣고 오겠습니다.
02:49나 있잖아요.
02:51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 안 들어요.
02:55죽으면 또 만날 거고
02:58마지막이라고 그러지 마.
03:01생각하기에 따라서 마지막은 없어요.
03:05저 사람에 대한 추억도 많고
03:07다 기억하면서 살 거예요.
03:09왜 마지막이야?
03:11이제 곧 만나자고 하고 싶어요.
03:13내가 뭐 얼마나 오래 살겠어.
03:16곧 만나요.
03:18곧 만날 거예요.
03:19너무 그리운 사람이니까.
03:22최불암 선생하고는 나하고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
03:26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먼저
03:29아니면 내가 괜히 미안해요.
03:32내가 먼저 죽어야 되는데
03:33먼저 가셨네.
03:36우리의 자랑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서
03:39마음 한구석이 많이 섭섭합니다.
03:42안녕히 가세요.
03:46추억이 너무 많아서
03:47그냥
03:49잘 간직하겠습니다.
03:55지금 나오신 분들
03:57최불암 씨처럼
03:59국민 어머니로도 불려도
04:02손색이 없을 정도의
04:03그런 원로 배우들이고
04:04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으시겠습니까?
04:06특히 김혜자 씨 같은 경우는
04:0922년간 부부 역할을 했기 때문에
04:11또 남다른 마음이실 것 같습니다.
04:14전원일기만 22년이고요.
04:16그 외에도 사실 한 대여섯 편에서
04:18부부 연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04:20그래서 최불암 씨가 생전 농담처럼
04:23낮에 내 아내는 김혜자
04:25밤에는 김민자다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었다고 하는데
04:28사실 지금 김혜자 씨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04:312주 전에 새로운 영화가 개봉됐는데
04:32그때 언론 시사회에 오기로 돼 있었는데
04:35불참을 했어요.
04:36대신 기자들한테 손편지를 써서 미안함을 전했었는데
04:39그랬던 김혜자 씨이기 때문에
04:41이 자리에 직접 와서 조문을 했다는 거
04:44얼마나 최불암 씨에 대한 마음이 남다른지를 알 수 있고요.
04:47사실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04:49정승이 돌아가시면 정승집에 사람이 오지 않는다.
04:52즉 그 사람한테 잘 보이려고 했던 사람들 때문에
04:54그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는 얘기인데
04:56최불암 씨의 빈손은 항상 북적이었습니다.
04:59선후배뿐만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이 두루 왔었는데
05:02그만큼 최불암 씨가 평생을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05:07안진영 기자님도 다녀오셨죠?
05:09저는 토요일에 다녀왔는데
05:11저는 낮에 갔을 때 그때 오셨던 분은
05:13가요 무대를 진행하고 계시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계셨고
05:16그리고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있었습니다.
05:19김종인 위원장 같은 경우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05:21알고 보니 최불암 씨와 중고등학교 동창이었고
05:24짝꿍이었다는 얘기를 했었죠.
05:25즉 사실 그냥 넘어가면 사람들이 모를 인연인데
05:29이 순간에 빈소를 찾아와서 고인의 마지막 넋을 기렸다는 것 자체가
05:34최불암이라는 사람이 어떤 인품을 가졌고
05:36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는 거죠.
05:38직접 다녀오시기도 하셨고
05:40또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보셨잖아요.
05:42어떤 장면이 가장 인상 깊으셨습니까?
05:45저는 마지막으로 통화한 게 지난 6월이었는데
05:47그때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힘들어왔었습니다.
05:51하지만 언젠가 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놓지 않으셨고요.
05:53이분이 굉장히 좋아하는 음식점, 사람들과 만나는 곳이 있는데
05:58거기가 바로 노량진 수산시장입니다.
06:01이계인 씨나 김용건 씨 이런 분들과 함께
06:04그곳에서 자주 어우러졌다고 하는데
06:05그곳에서 상인들도 함께 어우러졌던 거죠.
06:08즉 항상 소박하게 소탈하게
06:10미디어에서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06:11실제 모습 자체가 우리네 아버지
06:13털털했던 모습으로 많은 분들이
06:16이 최불암 씨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06:18배우 김혜수 씨가 이번에 언론에 주목을 많이 받았는데
06:23하루만 온 게 아니라 내내 빈소를 시켰다고 그러더라고요.
06:27네, 이곳을 지키면서 아내인 김민자 씨를 챙기고
06:30또 조문객들을 일일이 다 마주하고
06:33또 배웅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06:34그 인연은 사실 김민자 씨랑 시작이 됐습니다.
06:381987년에 사모곡이라는 작품에서 모녀 연기를 했었는데
06:41그때 김혜수 씨가 고등학생이었거든요.
06:43그 다음에 인연을 맺었고 그때부터 줄곧 함께해왔다는 거죠.
06:48그리고 중요한 건 또 하나 있습니다.
06:50지난 2018년 그때 세례미사를 최불암 씨가 받았는데
06:54그 자리에 이번에 장례미사를 집도한
06:57염수경, 추계경이 역시 세례미사를 했었고
06:59그때 아내뿐만 아니라 김혜수 씨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07:03지금 보시는 저 사진이 바로 그 사진입니다.
07:058년 전에도 저렇게 함께할 정도로
07:07굉장히 돈독한 사이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07:09이번 빈소를 내내 김혜수 씨가 지켰던 거였고요.
07:128년 전에는 저렇게 세례미사였는데
07:15오늘만큼은 안타까운 장례미사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07:19조금 전에 영상으로도 나왔지만
07:21김혜수 씨가 직접 신발 정리까지 하는 모습까지
07:24좀 볼 수 있었거든요.
07:25하나하나 다 챙겼다고 볼 수 있겠네요.
07:27사실상 김혜수 씨의 역할은 후배가 아니라
07:30상주나 다름없었습니다.
07:33그곳에서 아무래도 연예인 선후배들이 많이 올 텐데
07:35그분들을 일일이 얼굴을 마주하고
07:38또 이렇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지 놓고 봤을 때
07:41김민자 씨는 아내분이신데
07:43이번 일로 굉장히 씨름에 젖어 계신 상태에서
07:45김혜수 씨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죠.
07:48최불암 배우, 연기자뿐만 아니라
07:51프로그램 진행도 맡아서
07:53오랫동안 진행을 하기도 했었는데
07:55한국인의 밥상 같은 경우에는
07:58투병 중에도 내레이션을 맡아서
08:00눈길을 끌기도 했었죠.
08:01네, 맞습니다.
08:02이분이 일단 프로그램을 맡으면 장수합니다.
08:05수사반장 18년, 그리고 전원일기 22년이었죠.
08:08그런데 알고 보니까
08:09한국인의 밥상도 무려 14년을 진행을 해왔다는 거죠.
08:13지난해 3월에 내려왔는데
08:14그때 내려왔을 때 이유도 그겁니다.
08:17이게 아무래도 전궁 방방곡곡을
08:19직접 발로 밟으면서
08:21대중들, 서민들과 소통을 해야 되는 프로그램인데
08:23허리 디스크 때문에 걷기가 힘들어진 거죠.
08:26여기서 내가 무리하게 욕심을 내기보다는
08:28후배한테 물려줄 때가 됐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08:32그래서 최수종 씨가 맡게 됐었고
08:34그렇게 본인이 병상에 있을 때도
08:36따로 자신이 출연한 분량만큼은
08:38직접 병상에서 내레이션을 할 정도로
08:40굉장히 많은 애착을 보였었고요.
08:44별세 직후에 최수종 씨가 제가 통화를 해봤었습니다.
08:47공교롭게도 별세 다음 날 최수종 씨가
08:49한국인의 밥상을 촬영하러 가는 길이었어요.
08:52촬영하러 가는 길에 저랑 통화를 하면서
08:54처음으로 별세 소식을 접한 거죠.
08:56포항에서 촬영을 하고서는 곧바로 빈소로 한 달음에 달려왔는데
09:00그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09:01최불암 씨가 물려주면서 후배한테 먼저 전화를 했는데
09:04한국인의 밥상은 하나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09:08이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 끼 한 끼를 책임지는 거기 때문에
09:12그만큼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해야 된다.
09:15그렇게 진행을 하라 했던 얘기가
09:17아직까지도 기전에 맴돈다고 했습니다.
09:19작품의 연기 하나도 허투루 안 하셨던 분인데
09:23이 프로그램 진행도 한국인의 정체성을 전한다.
09:27이런 사명감으로 했다는 걸 알 수가 있고
09:29그리고 투병하면서 시청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서
09:35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
09:39이런 요청도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09:41그래서 지난 5월에 한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가 방송이 됐었죠.
09:45스스로 정리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09:48그런데 중요한 건 최불암 다큐멘터리인데
09:50최불암은 들어가지 못했어요.
09:51왜 그랬을까요?
09:52그만큼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09:54본인은 참여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만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으니까
09:59그렇게 하지 않는 게 좋겠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10:01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은 꼭 만들어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10:06그 이유는 스스로를 낮춰서 광대의 마음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10:10광대라고 하면 사실 연예인들을 낮춰서 부르는 표현일 수 있는데
10:14서민들에게 웃음과 울음을 줄 수 있고
10:17그들과 어우러지는 그 광대의 역할이야말로
10:19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는 게
10:21최불암이라는 배우의 신념이었습니다.
10:24그리고 또 최불암 배우가
10:26생전에 많은 어록들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10:29어떤 것들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10:31저도 사석에서 뵀을 때
10:33그때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뵀었는데
10:35이분이 말을 할 때 어록을 남기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10:39그냥 평소에 생각하는 걸 그대로 얘기하는데
10:41그게 인생의 지침처럼 된다는 거죠.
10:44중요한 건 이겁니다.
10:45좋은 연기를 왜 해야 되나?
10:47연기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10:48좋은 연기를 해야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고
10:51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게
10:53본인의 신념이었고요.
10:54대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10:56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10:59항상 어린이를 보살펴야 된다고 해서
11:02아까 말씀드린 대로
11:02어린이를 보살펴야
11:04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11:06이를 실천해 왔다는 거죠.
11:08또 하나 말씀드리면
11:09수사반장의 마지막에 보면
11:11거기서 박반장이 이런 얘기를 해요.
11:13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진다.
11:16요즘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표현인데
11:18이렇듯 너무 좋은 것만 보려고 하지 말고
11:21또 너무 나쁜 것만 보려고 하지 말고
11:22오히려 그 적당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를
11:25항상 얘기해 왔습니다.
11:27어록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11:29워낙에 세상에 대한 통찰력이 있으시다 보니
11:33무슨 말을 하면 어록이 된다 하셨는데
11:35김혜수 씨도 이제 최무람 씨에게 받은 문자를 보면
11:39꼭 시 문장 같다.
11:41이런 얘기를 했잖아요.
11:42이번에 받은 건 아니었고
11:43앞서 받았던 문자를 한번 공개한 적이 있는데
11:46정말 한 편의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11:48지금 영상에도 나오고 있지만
11:50지금 보면 포도주 한 잔하고 무조건 자야 해.
11:53저게 무슨 얘기냐면
11:53해외 출장을 갔는데
11:55그곳에서 몸을 잘 간수하라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11:58이게 우리 입장에서 편하게 그냥 잘 쉬다 할 수 있는데
12:02그게 아니라 시적인 표현을 통해서
12:04얼마나 상대방을 내가 아끼고 있는지를 느끼게 해준다는 거죠.
12:09그렇기 때문에 저 시 한 편이
12:10김혜수 씨가 더욱더 최무람이라는 배우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12:14또 하나의 근거가 된 것 같습니다.
12:16또 배우 이재훈 씨, 최무람 배우의 대표작이죠.
12:19수사반장을 리메이크한 수사반장
12:221958에서 박영환 반장의 젊은 시절을 연기했는데요.
12:26최무람 배우가 연기했었을 때를
12:28이렇게 추억을 하면서 한마디를 했습니다.
12:30직접 듣고 오겠습니다.
12:33제가 최무람 선생님과 함께
12:36수사반장 1958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12:39함께 또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12:43제가 수사반장의 박반장의 모습을 좀 따라하고 싶어서
12:47선생님을 또 유심히 관찰해보기도 하고
12:51어떻게 또 웃으시나 이렇게 많이 들여다보곤 했는데
12:56선생님께서는 그냥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13:01제가 생각하는 또 박반장의 젊은 모습을 너무 기대하고
13:06그리고 지켜보겠다고 말씀을 해주셔서
13:09더 연기를 잘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13:12저는 솔직히 같이 연기하는 그 순간이
13:17내 친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13:20이 모습이지 않았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13:23최무람 선생님과 함께 했었던 그 순간이
13:26제 연기 인생에 있어서
13:28가장 영광스럽고 오랫도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될 것 같아요.
13:34선생님께서 여태까지 걸어오신 대한민국의 연극과
13:40그리고 TV 드라마의 길을 제가 조금이나마
13:46선생님의 마음을 담아서 또 잘 갈 수 있게 노력할 거니까
13:53지켜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3:57앞서 동료 김혜자 씨나 나무니 씨나
14:01동료 원로 배우들의 메시도 상당히 따뜻했지만
14:04또 최무람 씨 입장에서는
14:06이재훈 씨 같은 경우는
14:08돌아온 레전드, 수사반장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잖아요.
14:12이 배우에 대한 애정도 또 각별했을 것 같아요.
14:15이재훈 씨의 저 한마디가 좀 의미가 있는 게
14:17최무람 씨가 사실상 마지막 작품이 2014년이고
14:20사실 그 다음에는 연기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14:23한국인의 밥상에 전념을 했는데
14:25그러다 이 수사반장 리메이크작을 통해서
14:27이재훈 씨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겁니다.
14:30그때 했던 얘기 중에 중요한 게 바로 그 부분이에요.
14:33너의 연기를 하라고 했다는 거죠.
14:35나를 따라하지 말고 지금 너의 연기를 하라.
14:39그냥 편하게 했으면 좋겠다.
14:40이거 자체가 배우로서 후배를 인정을 하고
14:43각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욱더 좋다는
14:46그 최무람 씨의 신념이 담겨있는 얘기라고 볼 수 있고요.
14:49그렇기 때문에 최무람 씨의 모습을 보면서
14:51이재훈 씨도 그런 얘기를 합니다.
14:52친할아버지 같다.
14:54지금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지만
14:56선생님이라든지 이런 선배님이라는 표현들보다는
14:59아버지, 형 이런 표현을 쓰거든요.
15:01즉 어떤 높은 위치에서 권위를 보여주기보다는요.
15:05낮은 자세로 항상 모든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려 했던
15:08고인의 삶을 알 수 있습니다.
15:10정부가 최무람 배우에게 문화예술 분야 최고훈장입니다.
15:14금관 문화훈장을 추서를 했거든요.
15:16이 부분도 또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보여져요.
15:19네, 맞습니다.
15:20앞서서는 은관 문화훈장까지는 받았었는데
15:23별세 직후에 정부가 금관 문화훈장을 추서했습니다.
15:26단순히 연기자로서 유명해서가 아닙니다.
15:29그가 이렇게 어린이들을 보살피고
15:31사회적으로 굉장히 좋은 선한 영향력을 끼친
15:34전반적인 상황을 모두 고려해서
15:36금관 문화훈장이 수은된 것으로 보입니다.
15:39네, 수많은 작품 그리고 오랜 시간의 나눔을 통해서
15:44사회에 많은 빛을 뿌리고 가셨습니다.
15:47최부람 씨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겠습니다.
15:51지금까지 안진용 문화일보 기자였습니다.
15:53잘 들었습니다.
15:54고맙습니다.
15:5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