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분 전
- #2424
■ 진행 : 이승민 앵커, 박석원 앵커
■ 출연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 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평생을 함께하며 우정을 나눴던 동료 배우들에게도 고인의 빈자리는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하루였는데요. '전원일기'에서 오랜 세월 부부로 호흡을 맞춘 김혜자 씨고 절친한 친구였던오지명 씨와 나문희 씨도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마지막 인사 직접 들어보고 오겠습니다. 원로 배우들의 이런 인사가 정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정말 한 분 한 분 말씀하신 것처럼 추억이 워낙 많았잖아요. 고인과는 오랜 인연이었고요.
[하재근]
처음 나온 김혜자 씨하고는 전원일기에서 무려 22년 동안 부부 역할로 나오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제 부부라고 오인할 정도로 연기 호흡을 보여주면서 최불암 씨는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김혜자 씨는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했고 22년 세월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호흡을 맞췄던 분이 세상을 떠나시니까 마음에 안타까움이 클 것이며 오지명 씨도 고등학교 때부터 최불암 씨하고 단짝 친구였다고 합니다. 39년생 동갑인데 호적상으로는 최불암 씨가 1살 어린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오지명 씨가 최불암 씨한테 그것 때문에 많이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단짝친구로 잘 지내왔고 2000년대에 오지명 씨가 만든 영화 까불지 마에도 함께 출연하기에도 하고 절친이었는데오지명 씨 입장에서는 그런 절친을 보낸 것이고 나문희 씨 입장에서도 그런 것이고 원로배우들이 굉장한 상실감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화면에 나오는 세 분뿐만 아니라 다른 원로 배우들도 많이 오셨거든요. 그분들이 굉장히 마음 아파할 것 같고. 최불암 씨를 많은 분들이 애도했는데 원로배우분들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혜자 씨의 경우에는 우리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남겼었는데 장례절차는 오늘 마무리가 됐는데 오늘 여러 가지 장례 절차들 중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까?
[하재근]
장례 자체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는 자체가 가장 눈에 띄는 거죠. 보통 이런 유명... (중략)
YTN 오동건 (odk79829@ytn.co.k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6_202611021412308067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 출연 : 하재근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 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평생을 함께하며 우정을 나눴던 동료 배우들에게도 고인의 빈자리는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하루였는데요. '전원일기'에서 오랜 세월 부부로 호흡을 맞춘 김혜자 씨고 절친한 친구였던오지명 씨와 나문희 씨도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마지막 인사 직접 들어보고 오겠습니다. 원로 배우들의 이런 인사가 정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정말 한 분 한 분 말씀하신 것처럼 추억이 워낙 많았잖아요. 고인과는 오랜 인연이었고요.
[하재근]
처음 나온 김혜자 씨하고는 전원일기에서 무려 22년 동안 부부 역할로 나오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제 부부라고 오인할 정도로 연기 호흡을 보여주면서 최불암 씨는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김혜자 씨는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했고 22년 세월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렇게 호흡을 맞췄던 분이 세상을 떠나시니까 마음에 안타까움이 클 것이며 오지명 씨도 고등학교 때부터 최불암 씨하고 단짝 친구였다고 합니다. 39년생 동갑인데 호적상으로는 최불암 씨가 1살 어린 것으로 되어 있거든요. 오지명 씨가 최불암 씨한테 그것 때문에 많이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단짝친구로 잘 지내왔고 2000년대에 오지명 씨가 만든 영화 까불지 마에도 함께 출연하기에도 하고 절친이었는데오지명 씨 입장에서는 그런 절친을 보낸 것이고 나문희 씨 입장에서도 그런 것이고 원로배우들이 굉장한 상실감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화면에 나오는 세 분뿐만 아니라 다른 원로 배우들도 많이 오셨거든요. 그분들이 굉장히 마음 아파할 것 같고. 최불암 씨를 많은 분들이 애도했는데 원로배우분들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김혜자 씨의 경우에는 우리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남겼었는데 장례절차는 오늘 마무리가 됐는데 오늘 여러 가지 장례 절차들 중에 눈에 띄는 장면이 있었습니까?
[하재근]
장례 자체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진다는 자체가 가장 눈에 띄는 거죠. 보통 이런 유명... (중략)
YTN 오동건 (odk79829@ytn.co.kr)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ln/0106_202611021412308067
▶ 제보 안내 : http://goo.gl/gEvsAL, 모바일앱, social@ytn.co.kr, #2424
▣ YTN 데일리모션 채널 구독 : http://goo.gl/oXJWJs
[ 한국 뉴스 채널 와이티엔 / Korea News Channel YTN ]
카테고리
🗞
뉴스트랜스크립트
00:00이번에는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인의 발자취를 조금 더 돌아보겠습니다.
00:05어서 오십시오.
00:06안녕하세요.
00:07평생을 함께하며 우정을 나눴던 동료 배우들에게도 고인의 빈자리가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그런 하루였는데요.
00:16전원일기에서 오랜 세월 부부로 호흡을 맞춘 김혜자 씨, 그리고 절친한 친구였던 오지명 씨, 그리고 배우 남은희 씨도 마지막 가는 길을
00:23배웅했습니다.
00:25마지막 인사 직접 들어보고 오겠습니다.
00:29나 있잖아요. 이게 마지막이란 생각 안 들어요.
00:34죽으면 또 만날 거고, 마지막이라고 그러지 마.
00:40생각하기에 따라서 마지막은 없어요.
00:44저 사람에 대한 추억도 많고, 다 기억하면서 살 거예요.
00:49왜 마지막이야?
00:50이제 곧 만나자고 하고 싶어요.
00:53내가 얼마나 오래 살겠어. 곧 만나요. 곧 만날 거예요. 너무 그리운 사람이니까.
01:00최바람 선생님하고는 나하고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먼저.
01:08아니, 내가 괜히 미안해요. 내가 먼저 죽어야 되는데.
01:13먼저 가셨네요.
01:16우리의 자랑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가서.
01:19마음 한구석이 많이 섭섭합니다.
01:21안녕히 가세요. 추억이 너무 많아서, 그냥 잘 가져가겠습니다.
01:36원로 배우들의 이런 인사가 정말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내용들이었는데, 정말 한 분 한 분 다 말씀하신 것처럼 추억이
01:44워낙 많았잖아요. 고인과는. 오랜 인연이었고요.
01:47네, 처음 나온 김혜자 씨하고는 전원일기에서 무려 22년 동안 부부 역할로 나오면서, 많은 국민들이 실제 부부라고 오인할 정도로.
01:56그렇죠.
01:57그렇게 연기호흡을 보여주면서, 최바람 씨는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했고, 김혜자 씨는 국민 어머니로 자리매김했고, 그러한 22년 세월이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겠습니까.
02:08그랬던, 그렇게 호흡을 맞췄던 분이 세상을 떠나시니까 얼마나 또 마음의 안타까움이 클 것이며, 오지명 씨도 고등학교 때부터 최바람 씨하고 단짝
02:19친구였다고 합니다.
02:20그런데 이제 동갑이거든요. 두 분이 39년생 동갑인데, 호적상으로는 최바람 씨가 한 살 어린 걸로 되어 있거든요.
02:28그래서 오지명 씨가 최바람 씨한테 그것 때문에 많이 놀리기도 하고, 그렇게 단짝 친구로 잘 지내왔고,
02:342000년대에 오지명 씨가 만든 영화 까불지마에 함께 출연하기도 하고, 그러한 절친이었는데, 오지명 씨 입장에서는 또 그런 절친을 보낸 것이고,
02:43나무늬 씨 입장에서도 그런 것이고, 이런 원로 배우들이 굉장한 상실감을 아마 느끼셨을 것 같은데,
02:50지금 화면에 나온 세 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원로 배우들도 많이 오셨거든요.
02:54그분들이 다 굉장히 마음 아파할 것 같고, 하여튼 뭐 최바람 씨를 이렇게 많은 분들이 애도했는데,
03:01저 원로 배우분들은 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03:06또 김혜자 씨의 경우에는 우리 기억 속에 영원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남겼었는데,
03:10일단은 장례 절차는 오늘 마무리가 됐는데, 오늘 여러 가지 장례 절차들 중에 혹시 눈에 띄는 장면들도 있으셨습니까?
03:17일단 장례 자체가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장으로 치러진다는 그 자체가 가장 눈에 띄는 거죠.
03:24보통 이런 유명한 배우가 돌아가시면 배우장이라든가, 방송인장이라든가, 이렇게 치르고 그걸 본인들이 굉장히 영예로 느끼거든요.
03:33그런데 최바람 씨는 전혀 그런 게 아니라 어린이 재단 장으로 치러서,
03:38그만큼 이분이 생전에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에 진심이었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했고,
03:46그 운구 행렬도 보통은 이제 방송국이나 촬영지 같은 거 많이 들리거든요.
03:51최바람 씨 같은 경우에는 공채 탤런트 데뷔는 KBS에서 했지만,
03:55나중에 대표작 두 편, 수사반장하고 전원일기를 다 MBC에서 했거든요.
04:01그러니까 MBC를 들러도 될 법도 한데,
04:05그런 걸 선택하지 않고 최바람 씨가 생전에 나 죽으면 운구할 때 어린이 재단에 들러달라.
04:11그렇게 유언을 남겨서 어린이 재단에 들르는 모습.
04:15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굉장한 귀감이 됐을 것 같고,
04:18아마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분들이, 국민들이 지금 언론을 통해서 계속 접하고 있거든요.
04:23최바람 씨가 이런 봉사를 냈다, 기부를 냈다, 재단에서 활동했다.
04:28이런 거 보면서, 뉴스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이 나도 이렇게 기부해야 되겠다, 봉사해야 되겠다.
04:33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고, 후배 연예인들도 나도 저렇게 진정성 있게 봉사활동을 해서
04:39나중에 장례식 치를 때 재단에서 치를 수도 있는 것이고, 이런 생각들을 할 것 같거든요.
04:44그래서 우리 사회의 거대한 선한 영향력, 이런 것이 자라날 수 있게
04:48하나의 씨앗을 돌아가시면서 우리한테 선물로 남겨주셨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04:55오늘 발의는 비공개로 진행이 되긴 했지만, 화면에도 잠깐 보였었는데,
04:59마지막 관이 나가는 길에 배우 김혜수 씨, 그리고 후배인 신현준 씨, 정준호 씨가
05:05눈물로 배웅하는 모습이 포착이 됐거든요.
05:08이 세 분은 고인과 어떤 인연이 있었던 건가요?
05:11많은 후배들이 다 눈물로 배웅을 했습니다. 추모를 하고.
05:17정준호 씨, 신현준 씨 같은 경우에는 후배니까, 그리고 이분들이 워낙에 연예계 마당발이기 때문에
05:23오다 가다가 계속해서 최분환 씨를 어른으로 접했을 것이고,
05:28그리고 신현준 씨 같은 경우에는 연예 정보 프로그램도 오랫동안 진행을 했으니까,
05:31그 과정에서 당연히 접촉이 있었을 것이고,
05:34그러한 개인적인 인연이라든가, 아니면 또 선배로서의 존경심이라든가,
05:39이런 것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오열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05:42그리고 특히 김혜수 씨 같은 경우에는,
05:45김혜수 씨하고 최분환 씨 부부의 인연의 첫 시작점을 온 국민이 다 아는데,
05:52바로 1987년에 KBS 드라마 3호곡,
05:55거기에 김혜수 씨가 최분환 씨 부인 김민자 씨하고 모녀 역할을 출연하면서,
06:01그때부터 인연이 시작이 됐다는 거거든요.
06:04그 당시 3호곡이 굉장한 인기 드라마였습니다.
06:06김혜수 씨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 3호곡에 출연해서,
06:11일약 연기바 스타를 완전하게 자리매김을 하게 됐던 거거든요.
06:15정보석 씨도 거기에 데뷔해서 그때부터 스타도함에 올랐던 것이고,
06:19이게 국민 드라마였었는데,
06:21그때 김민자 씨가 김혜수 씨를 아주 잘 돌봐줬다고 합니다.
06:25김혜수 씨가 고등학교 1학년 어린 나이로 사극을 찍다 보니까 어려운 게 많았었는데,
06:30진짜 엄마처럼 잘 현장에서 돌봐줬다는 거예요.
06:33그래서 그 다음부터 아버지, 어머니처럼 최불암 씨, 김민자 씨 부부를 따랐고,
06:39김혜수 씨가 또 최불암 씨를 이모부라고 불렀고,
06:42그 인연을 수십 년 동안 이어왔는데,
06:45그게 87년에 시작된 인연이,
06:48이번에 장례식장에서 김혜수 씨가 3일 내내 빈소를 지키면서,
06:51막 눈물로 최불암 씨를 또 보내는 그런 모습으로 이어졌습니다.
06:55그래서 그런지 빈소에서도 가족처럼 정말 오신 조문객들을 다 일일이 맞아주고,
07:03신발 정리까지 하는 모습이 상당히 눈길을 끌더라고요.
07:06그렇습니다.
07:07최불암 씨의 부인인 김민자 씨가 고령이니까,
07:11일일이 다 손님 맞이하고 이러기가 체력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고,
07:15그래서 김혜수 씨가 마치 맏딸처럼 다 현장에서 손님들 맞이하고,
07:19신발 정리도 하고,
07:21또 발이 날 때 눈물로 또 최불암 씨를 보내고,
07:25이런 모습이 나타나서 많은 분들을 또 안타깝게 했습니다.
07:28그리고 또 염수정 주기경의 집전으로 오늘 장례의 인사 진행이 됐는데,
07:33앞서 병상에서는 병자성사도 집전하기도 했다고 하고요.
07:36두 사람도 오랜 인연이 있었던 거죠.
07:38네, 그러니까 이제 최불암 씨가 봉사를 하다 보니까,
07:41그 가운데 만나게 된 거예요.
07:432012년에 소년 수영자 교정 교화 프로그램 캠프에,
07:48최불암 씨가 봉사하러 갔는데,
07:50그 캠프가 바로 천주교가 주도하는 그러한 캠프였다는 겁니다.
07:54그때 이제 그때부터 인연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돼서,
07:58계속해서 그 인연을 이어온 곳이고,
08:01그리고 또 최불암 씨가 김민자 씨를 매주 여의도 성당에 데려다줬다고 합니다.
08:07매주 일요일마다.
08:09그러면서 이제 염수정 주기경하고 계속,
08:11인연이 지속이 되면서 염수정 주기경이 그때부터 최불암 씨한테 반은 신자다.
08:17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는데,
08:19결국 염수정 주기경한테 세례도 받고 그렇게 된 것인데,
08:23그 세례받을 당시에 김민자 씨 세례명이 도미니카여서,
08:28여서 최불암 씨한테 염수정 주기경이 도미니코라는 세례명을 권유했다고 합니다.
08:35그래서 최불암 씨가 도미니코를 선택하지 않고 프란치스코를 선택하면서 그 이유가 프란치스코가 가난한 약자들을 많이 도와줬던 성인이었거든요.
08:45그래서 그러한 성인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최불암 씨가 약자들을 성기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아서 프란치스코를 또 선택을 했고,
08:56그러면서 영기자가 성인은 아니지만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09:02이런 말을 또 최불암 씨가 했다고 합니다.
09:05그러한 인연이 염수정 주기경하고 최불암 씨 사이에 있는 거죠.
09:10정말 생활 하나하나에 모든 고인의 뜻이 다 담겨져 있는데,
09:15그 뜻이 정말 모두가 다 한길로 가는 것 같아요.
09:17약자들을 향하는 마음, 그리고 또 사람이 먼저 돼야 된다라는 이런 부분들을 상당히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 같아요.
09:23그렇습니다.
09:23그러니까 최불암 씨가 후배들한테 배우 이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된다.
09:29그런 얘기도 했었는데, 종교에 귀의하는 것도 옛날부터 보면 역사적으로 사람이 어느 정도 고령 나이가 되면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는 많았거든요.
09:40최불암 씨도 그런 케이스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09:43그런데 종교에 귀의하면서도 최불암 씨의 종교 생활에도 역시 최불암 씨의 지론, 최불암 씨의 뜻이 그대로 투영이 됐다.
09:52그래서 최불암 씨가 81년부터 어린이재단에서 활동을 하면서 계속 봉사하려 했던 그 정신이 나중에 말년에 종교에 귀의하면서도 결국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으로 그렇게
10:03또 나타나게 되고,
10:05종교 속에서도 약자를 생각하면서 성인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된다.
10:09이렇게 나타나게 된 것 같습니다.
10:12오늘 장례 미사에서 파페라 가수 임영주 씨가 아베마리아로 고인을 추몰을 했는데,
10:18임영주 씨가 최불암 씨가 생전에 마지막 길에 웃으면서 인사해달라고 당부했다.
10:25이렇게 전했는데 이건 어떤 의미였을까요?
10:27그러니까 최불암 씨의 담담한 생사관이 나타난 것 같은데,
10:31그러니까 나 죽어도 너무 슬퍼하고 그러지 말고, 나도 생에 연련하는 사람 아니고,
10:38그냥 담담하게 웃으면서 보내달라는 취지로,
10:43그래서 최불암 씨가 생전한 옷도 사회적 약자들의 위화감을 느끼고 이럴까 봐,
10:50화려한 옷 안 입고, 수수한 옷만 입고 그랬다고 하는데,
10:53장례도 그렇게 조용하게, 조용하게 치러서 나를 조용하게 보내달라,
10:58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
11:00또 파페라 테너 임영주 씨가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과거에 아베마리아를 불렀었거든요.
11:08그런데 이제 오늘 프란치스코 최불암 씨를 보내는 길에 또 아베마리아를 불렀습니다.
11:14네, 최불암 씨가 남긴 여러 족적들이 있는데,
11:17작품 이야기도 좀 해보겠습니다.
11:1967년 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했지만,
11:21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게 수사반장이지 않습니까?
11:24그 수사반장 속에 최불암 씨의 모습도 좀 짚어볼까요?
11:26네, 수사반장이 국민들한테 정말 큰 사랑을 받았던 시청률 70%,
11:32말이 70%지,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전 국민이 다 봤다라고 할 수가 있는 거고,
11:37수사반장 하는 시간이 되면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부부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이 다 본 거고,
11:43최불암 씨가 그쪽에서 담배 피운 남자들이 다 따라 피고,
11:45박정희 대통령도 똑같이 따라 피고,
11:47그래서 유영수 여사가 최불암 씨한테 전화해가지고,
11:50국민 건강을 생각해서 좀 적게 펴달라고,
11:53그래서 한 반으로 줄였다는 거죠.
11:56그런데 이 수사반장이 모토가 빌딩이 높아질수록 그림자가 길어진다거든요.
12:03그래서 그 당시 우리나라 고도 성장할 때인데,
12:06화려하게 막 성장을 하지만,
12:08그 그늘에서 소외된 서민들의 애완을 조명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모토였었고,
12:14그래서 보면 항상 나쁜 범죄자한테는 엄격하게 이렇게 하지만,
12:18그 생계형 범죄자들이 막 등장하거든요.
12:21그런 범죄자들한테 막 사연 듣고 이러면,
12:24또 항상 또 최불암 씨가 하얀 선수건으로 막 눈물 닦고,
12:27땀 닦고 막 이러면서 이렇게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표출하는 모습.
12:31이게 국민들한테 감동을 줬던 프로그램이었고,
12:35원래 처음에는 이게 박반장 역할이었는데,
12:38최불암 씨가 이제 막 권총, 수갑 이런 거 들고 나왔었다고 합니다.
12:42그런데 최불암 씨가 스타일을 바꾼 거예요.
12:44권총, 수갑 다 없애고,
12:45그냥 트렌치코트에 그냥 따뜻한 느낌으로 그렇게 만들어서,
12:50결국 전 국민한테 사랑을 받았고,
12:52우리 국민들의 한 시대, 한 20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에,
12:56그 삶의 애완을 달라줬던 그런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12:59앞서서 이제 최불암 씨가 경찰 제복을 입고 사진을 찍은 모습이 있었는데,
13:05이 경찰청에서도 공식 SNS에 추모하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13:09네, 그러니까 최불암 씨는 거의 아까 영수정 추경이 반은 신자였다고 얘기했다고 말씀드렸는데,
13:14경찰의 입장에서는 반은 경찰이었구나, 그렇게 보는 건데,
13:19민간인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명예의 경찰이 1972년에 됐거든요.
13:23그때부터 다섯 번에 걸쳐서 계속 승진을 해가지고,
13:26수십 년 동안 계속 승진을 하는 거예요.
13:28진짜 경찰처럼.
13:29마지막에는 명예의 치안 정감, 명예의 국가수사본부장까지 됐거든요.
13:34그러니까 경찰이 최불암 씨를 잊지 않았다는 거죠.
13:37때만 되면 딱딱딱 맞춰서 승진을 시켜줬으니까,
13:40항상 경찰 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것이고,
13:42이번에 김종철 경찰총장 직무 대행이,
13:45최불암 씨는 14만 경찰을 넘어서서 5천만 국민한테 영원한 수사반장이다.
13:52그렇게 이야기하면서,
13:53경찰하고는 50년 이상의 인연이 있었다.
13:56그렇게 이야기했었는데,
13:57특히 경찰 입장에서 최불암 씨가 너무나 고마운 것이 과거에 권유주의 통치 시절에,
14:03일제시절부터 시작해서 권유주의 통치 시절까지,
14:06그 기간 동안 경찰 이미지가 좀 안 좋았었거든요.
14:10그때 수사반장이 경찰 이미지 제거에 엄청난 역할을 했던 겁니다.
14:15그렇다 보니까 최불암 씨나 수사반장 팀한테 경찰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마움을 느꼈을 것 같고,
14:21또 서민을 생각하는 경찰상,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 그러한 경찰상을 정립하는 데,
14:28또 최불암 씨나 수사반장 팀이 큰 역할을 했다.
14:31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14:33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대표작 전원일기 아니겠습니까?
14:36전원일기 속에 최불암 씨의 모습도 한번 짚어볼까요?
14:39네, 전원일기에서 본격적으로 국민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게 뜯은 건데,
14:44수사반장이 따뜻한 어른의 이미지이면서도 동시에 엄격하게 정의를 집행하는,
14:50그러한 역할이었다면 전원일기는 그냥 따뜻하고 푸근한 아버지 김 회장으로 간 것이죠.
14:57그래서 최불암 씨도 김 회장을 연기하면서 작정하고,
15:01아주 이렇게 큰 느티남 같은 그러한 이미지로 연기를 하려고 했다라고 이야기했었는데,
15:08우리나라의 개발 성장 과정이라는 것이 거대한 이촌향도의 흐름이었거든요.
15:16수많은 국민들이 고향을 떠나서 도시로 온 거예요.
15:19그러다 보니까 도시에서 다 고향을 그리워하고 그랬었는데,
15:23그러한 국민들한테 대리만족, 고향의 찾아온 같은 느낌을 줬던 프로그램이 전원일기였던 거였고,
15:30그래서 수많은 국민들이 고향 대신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전원일기를 보면서 달랬던 건데,
15:36그 달랬던 사람 중에 한 명이 정주영 회장이었고,
15:40정주영 회장이 최불암 씨한테 지게 매는 법도 가르쳐줬다고 하고,
15:43나 이 프로그램 나가야 된다고, 나 출연시켜달라고, 20분만 출연시켜달라고.
15:49그래서 출연하기로 됐는데, 현대그룹 임원들이 결사반대해서 출연은 무산됐다고 하지만,
15:55어쨌든 그 인연으로 나중에 통일국민당 국회의원도 최불암 씨가 됐는데,
15:59어쨌든 그렇게 재벌 회장부터 시작해서 온 국민의 고향에 대한 향수, 그리움,
16:05이걸 달래준 프로그램이 전원일기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16:09이 전원일기에서 특유의 파 하는 웃음소리도 또 만들어지기도 했었는데,
16:13그게 이제 건넌방에 어머니가 계신데,
16:16내가 여기서 크게 웃으면 어머니가 소외감을 느끼실 거 아니냐.
16:20그래서 내가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어머니 안 들리게 이렇게 하하하 웃지 않고,
16:27파 이렇게 소리를 내지 않고 술소리만 내면서 웃다 보니까 그렇게 만들어졌는데,
16:31그게 90년대 웃음코드로 또 소비가 되면서,
16:36최불암 시리즈 파 웃음, 대표적인 웃음코드가 되면서,
16:39최불암 씨가 90년대 국민들하고 또 신세대한테 아주 친밀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습니다.
16:46지금 특별한 인연들, 정주영 회장, 고 정주영 회장과의 인연도 얘기를 해주셨는데,
16:51최불암 배우는 생전에 한복 디자이너 박술려 씨와도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16:56박 씨는 고인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17:001년 전부터 직접 수위를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17:02얘기 들어보겠습니다.
17:12이번에 수위는 제가 선생님한테 특별한 색깔,
17:19그래서 지금 만든 지는 1년 됐어요.
17:21수위를 좀 만드시면서 특별히 신경 쓰시면 될 것 같습니다.
17:25선생님께서 평소에 이게 나쁘게 까다로운 게 아니고 한복의 진심이세요.
17:32예를 들어 소색이다, 그러면 정말 소색이야 되고,
17:37아이보리색이다, 그러면 옛스러운 걸로 너무 좋아하셔서.
17:45이렇게 정말 정성들여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입을 옷을 직접 만들어주셨는데,
17:53고인은 연예계, 그리고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정말 앞서 정치인들도 그렇고,
17:58각계각층과 다양한 인연들이 있잖아요.
18:00그렇죠. 그러니까 최불암 씨가 수십 년 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사회의 큰 어른으로 살아온 것이거든요.
18:10자타라는 게 무슨 뜻이냐면,
18:12본인도 자각을 했던 겁니다.
18:14내가 지금 이러한 캐릭터다.
18:16여기에 맞춰서 살아야 된다.
18:18그러니까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18:20그러니까 사적인 즐거움, 향락, 쾌락 이런 거 다 버려야 되는 거예요.
18:25그러니까 최불암 씨가 나는 배우지만 배우도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18:30이렇게 얘기를 했었는데,
18:32본인도 그래서 큰 어른처럼 살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니까 진짜 큰 어른이 된 것이고,
18:37남들도 다 큰 어른, 배우를 넘어서서 큰 어른을 생각을 하니까,
18:41각계각층하고 당연히 여러 봉사도 하고,
18:44최불암 씨가 이러니까 다양한 인연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고,
18:46아마 돌아가셔서 그렇지 살아계셨다면 박정희 대통령도 조문을 하셨을 것 같은데,
18:53그 시절부터 굉장히 여러 가지 인연이 있었으니까,
18:55유영수 여사도 그렇고,
18:57이번에도 그래서 경찰 지휘보도 당연히 빈소를 찾았고,
19:01재계에서도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라든가,
19:04이준근 부영그룹 회장이라든가,
19:06이런 분들, 또 정치권에서 대거 여야 할 것 없이,
19:09수많은 분들이 빈소를 찾으면서,
19:12그야말로 큰 어른이 세상을 떠났구나라는 게,
19:15또 다시 한 번 실감하겠습니다.
19:18또 수사반장 그리워하시는 분들 많았을 텐데,
19:212년 전에는 수사반장 1958에서 후배배우 이재훈 씨랑 연기도 하시지 않았습니까?
19:26그렇습니다.
19:27이제 최불암 씨가 연기에서는,
19:29그 전에 수사반장 새로 하기 전에,
19:321958인가요?
19:33그 하기 전에 진작에 물러났었는데,
19:35물러난 이유가 현장에 갔더니,
19:37나한테 좀 지적도 하고,
19:39이래야 되는데,
19:40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19:42잘하셨습니다.
19:43이런 것만 하더라.
19:44그래서 내가 남들한테 불편함을 주는 존재가 됐구나.
19:47그래서 내가 물러나야 되겠다라고 해서,
19:50물러났거든요.
19:51그런데 수사반장 1958 할 때는,
19:54수사반장의 세대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으니까,
19:57그때는 특별출연 형식으로 출연을 해서,
20:00이제 이재훈 씨하고 함께 연기를 했던 거죠.
20:02그래서 수사반장이라는,
20:04요즘에는 IP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20:06지적재산권,
20:08그걸 영어를,
20:09하도 많이 영어를 쓰니까,
20:10어쨌든 IP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20:12수사반장이라는 IP가 굉장히 소중한 우리나라의,
20:15이건 거의 공적인 자산 같은 느낌이거든요.
20:18그래서 이거를 옛날 추억의 드라마로 딱 끝내는 게 아니라,
20:21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서,
20:23세대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는 건데,
20:25거기에 이제 최불암 씨가 직접 출연해서,
20:28이재훈 씨한테 바톤을 넘겨주는 듯한,
20:31이런 모습이 굉장히 대중문화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20:35많은 분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20:36깊은 감회를 느꼈을 것 같습니다.
20:39지난해 이순재 배우에서 이어서,
20:41최불암 배우까지,
20:43정말 국민 아버지라고 불렸던,
20:45이런 원로 배우들이 한 분 한 분 떠나시면서,
20:48많은 분들이,
20:49뭔가 좀 세대가 변해가는 것 같다,
20:51세대가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것 같다,
20:53이런 표현들을 많이 하시거든요.
20:54네, 그러니까 최근 1년 사이에,
20:57이순재 씨 돌아가시고,
20:59올해 1월 달에 안성규 씨 돌아가시고,
21:01지금 최불암 씨 돌아가신 거예요.
21:031년 동안 벌어진 일들이거든요.
21:05그래서 정말 한 시대가 저물어간다라는 느낌이 들고,
21:10이순재 씨하고 최불암 씨가 두 분 다,
21:13한국의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았던 분들인데,
21:17이순재 씨는 좀 엄격한 가부장 같은 느낌이 있었다면,
21:20최불암 씨는 좀 더 인지한 아버지 같은 느낌이 있었고,
21:22안성규 씨는 국민 형님 같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21:26이분들이 1년 사이에 다 돌아가시니까,
21:29너무나 허전하고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건데,
21:33이러한 국민 배우들이 과연 앞으로 쉽게 또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21:37과거에는 TV 수상기 거실에 있는 거 한 대를 온 가족이 다 봤기 때문에,
21:42그 TV 스타가 그냥 국민 스타가 되는 거거든요.
21:45그런데 지금은 따로따로 보잖아요.
21:46휴대폰이나 이런 걸로 세대별로 따로 보기 때문에,
21:49이게 서로 좋아하는 콘텐츠가 세대별로 다 갈리다 보니까,
21:52국민 스타가 나오기가 어렵고,
21:54이러다 보면 사회가 점점 세대별 간극이 벌어지면서,
21:58파표나 개인이 고립되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22:02이런 식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22:04사회가 더 삭막해지고,
22:05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선배들의 모습을,
22:08연예인 입장에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22:11이 최불암 씨나 안성규 씨, 이순재 씨 같은,
22:14국민 배우, 국민을 통합시킬 수 있는,
22:16국민 아이콘, 이런 배우의 길을 가는 연예인들이,
22:19후배들이 많이 나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
22:22이런 후배들이 많이 나오고,
22:24그리고 또 대신에 영원하게 우리 마음속에는,
22:27또 최불암 씨가 남아 있을 겁니다.
22:29지금까지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22:31잘 들었습니다.
22:32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