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3위와 4위 주제인데요.
00:04이렇게 각계각층에서 최불암 선생님을 향한 애도가 끊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
00:08평생 놓지 않고 몸소 실천했던 공사정신일 겁니다.
00:14특히 남달랐던 아이들 사랑에 직접 이런 노래를 부르기도 했습니다.
00:19들어보시죠.
00:30나는 정말 꿈이 커요 빨리 어른이 돼야지
00:42그래야 나 아주 큰 꿈을 가져라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00:52암 되고 말 넌 지금 막 시작한 거니까
00:58전원일기가 80년에 시작을 했어요.
01:01금동이를 집이 데려오는 걸로.
01:04근데 그 영향력이 상당히 컸던 것 같아요.
01:07전부 그 공과가 나한테 오는 거예요.
01:09이건 내가 사기꾼 같다.
01:12그랬더니 뭘 그 어렵지 생각해.
01:15어린이재단이라고 있는데 거기 한 아이를 선택해서
01:19비싸지도 않으니까.
01:21그래가지고 저는 하나를 했는데
01:24그게 그 인연이 돼서 지금까지 온 거예요.
01:28네, 전원에 여러분들 기억나십니까?
01:32저 때가 1980년대 초반이었을 텐데
01:34저 같이 불렀던 저 어린이가 당시에 9살인가 그랬던 정효진 씨인데
01:3972년생이니까 지금 세월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01:43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진행이 되고
01:46발인이 11월 2일입니다.
01:48안중훈 기자, 그러니까 실제 입양도 했고
01:53또 어린이를 위해서 참 많은 일들을 했던 거죠.
01:56대중들에게 아동복지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02:01그런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02:03그렇기 때문에 지금 장례 역시
02:05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직접 진행을 하고 있고요.
02:10제가 오늘 현장에 가서도 초록우산 황영규 회장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02:13그 만큼 이곳에서 40년 넘게 본인 재단장으로서 많은 역할을 해왔는데
02:18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집니다.
02:19왜 그래야 했을지.
02:21최부람 씨가 지금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진정성 때문입니다.
02:25그래야 행동 하나는 뭐 하나 어색함이 없었다는 거죠.
02:28이게 무슨 얘기냐면 왜 어린이재단에 신경을 쓰게 됐나.
02:31전원일기에서 금동이가 있다는 거 아까 사진으로 보셨죠?
02:35중요한 건 이 금동이가 극중에서도 낳은 아이가 아니라
02:39북어라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입양을 합니다.
02:42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02:44그러자 다음 날 갑자기 방송사로 펠레터가 쇄도를 합니다.
02:48너무 훌륭한 일을 했다.
02:50당신에게 많은 정말로 존경을 보낸다.
02:53그 펠레터를 받은 최부람 씨는 생각을 합니다.
02:56실제 내가 아니라 김 회장이 극중에 산 건데
02:59내가 이런 칭찬을 받으면 이거는 나의 도리가 아니다.
03:02난 진짜로 어린이들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라고 굳게 결심을 하고
03:06그때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에 신경을 쓰게 됐고
03:10그 인연이 40년 넘게 이어졌던 겁니다.
03:13참 우연한 기회에 이렇게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03:17그것을 40년 동안 이어간다는 거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03:22아무나 할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03:24그래서 최부람 선생님이 더 존경을 받는 것 같습니다.
03:27이런 최부람 선생님의 봉사정신을 후배들이 또 이어가고 있습니다.
03:32그 선한 영향력 들어보시죠.
03:35전국 후원회장이시다 보니까 전국 8도를 다 다니시거든요.
03:41단 한 번도 힘들어하는 연세가 많으신데도
03:44힘든 내색 한번 하신 적 없고 늘 후배들 챙겨주시고
03:50저는 선생님 하셨던 말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게
03:54이런 진정한 봉사는 힘들 때 우산을 씌워주는 게 아니라
03:59같이 비를 맞아주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되게 인상 깊었어요.
04:06부족하지만 선생님 뒤를 이어서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04:10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04:15배우 김울동 씨의 아들이죠.
04:18송일국 씨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04:21진정한 봉사는 비 맞고 있는 사람에게 우산을 이렇게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04:27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라고요.
04:31남혁원 기자.
04:31굉장히 감동이 있는 대사였습니다.
04:34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너무 다가오는 말들이잖아요.
04:41이 말들을 정말 후배들한테 같이 몸소 실천할 수 있었던 것 같고요.
04:46그리고 보니까 혼자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사실은.
04:50그런데도 그 당시에 전원일기랑 다른 팀 같이 연기를 하는 팀 연기자들한테도
04:57이런 설득을 좀 하셨다고 해요.
04:59우리 다 같이 해보자.
05:00그래서 아예 대기실에 그런 초록 어린이 우산재단 같은 팜플릿 같은 게 있을 거잖아요.
05:06그거를 손수 놓으셨다고 하고요.
05:08그 당시에 연기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05:10최불암 선생님이 하자는데 당연히 나도 같이 해야지.
05:13그래서 많은 연예인들이 같이 할 수 있었던 거고요.
05:17지금 사진을 보시다시피 그 당시에 1980년대, 90년대는
05:22우리가 해외에 그렇게 자유롭게 나아가서 이렇게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05:27그런데 지금 보면 그 당시부터 최불암 씨 같은 경우에는 해외 봉사를 정말 많이 했고요.
05:34국외는 물론 국내 정말 너무 많은 봉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05:39그런데 보면 그의 삶을 보면 아버지가 정말 일찍 돌아가셨어요.
05:43아버지 같은 경우에는 정말 과로로 해서 35살 때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05:49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아버지의 사랑을 못 느꼈기 때문에
05:54이런 활동과 그리고 연기를 통해서
05:57아버지를 충분히 더 많이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06:02최불암 선생님은 아이들을 위한 봉사뿐만 아니라
06:05각종 공익활동에도 자신의 재능을 기부했었습니다.
06:08들어보시죠.
06:11통일을 대비해서 그런 새싹들에 대한 준비하고 있다는 것은
06:16매우 고무적인 일이고 참 잘하는 일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오늘 참여했었습니다.
06:22법으로 보호되니까 사장님들께 정말 든든한 안전망이 되겠습니다.
06:28참 다양한 활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06:31지금 보면요.
06:33여러분도 기억하십니까?
06:34지금 고인이 된 안성기 씨.
06:37유니세프에서 활동을 참 많이 했었죠.
06:40그리고 최불암 선생님 40년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활동을 했었습니다.
06:4630년, 40년.
06:48강산이 3번, 4번 변하는 시기에도 변하지 않고
06:52흔들리지 않고 이런 봉사활동을 해왔습니다.
06:54안중근 기자, 어디 제가 신문에 다른 신문이어서 제가 하진 못했습니다만
06:58까만 옷에 유니세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렇게 써놓고
07:04둘이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이 굉장히 인상 깊더라고요.
07:08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푼다.
07:10이게 금액의 크기도 있지만 제가 볼 때는 기간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07:14얼마나 오랫동안 진정성이 있는 모습을 보여줬냐.
07:18최불암 씨는 40년, 안성기 씨는 30년 넘게 그 활동을 해왔다는 거죠.
07:22요즘 보면 금원을 많이 내는 것도 중요한데
07:25오랫동안 얼마나 이 사람이 어떤 형식으로도 기부를 했냐가 중요한데
07:29최불암 선생님 같은 거 대표적으로 재능 기부가 많았습니다.
07:32예를 들어서 대기업 광고 모델도 있었지만 중소기업 중앙에 광고를 했었고요.
07:37그다음에 노란 우산이라는 것을 새롭게 만들 때 이게 설립 자금이 부족합니다.
07:42그러자 어떻게 했냐.
07:42본인이 무료로 모델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07:45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고요.
07:49또 하나는 예를 들면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최불암 시리즈라고 있죠.
07:52그 책을 만들었을 때도 그 책에 오히려 본인을 너무 희화하는 게 아니냐.
07:57그게 아니라 좋아 그 책을 만들어.
07:59다만 그 책으로 인한 인세를 소년소녀를 돕는 이런 기부금으로 냈다는 거죠.
08:05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기 위해서 노력을 해왔다는 겁니다.
08:10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해왔던 최불암 선생님이나 안성기 선생님.
08:16두 분 너무 세상을 빨리 떠나신 것 같아서 더욱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