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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분 전


당시 청와대 비서관 "본인 옷 딸 입게할 정도"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 한복… "속치마 기워 입어"
육영수 여사, 생전 '특활비' 장부도 재조명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채널A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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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다음은 박근혜 전 대통령, 또 박정희, 남편 박정희, 또 아들 박지만 등등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00:08영상으로 확인하시죠.
00:30교육 철학이 굉장히 철저하셨기 때문에 입는 옷이나 먹는 거나 이 모든 것에 대해서 굉장히 철저하게 하셨고 또 금검 절약 정신은
00:41말도 못합니다.
00:42어머니 스스로가 그런 모범을 보여주셨고.
00:49유경수 여사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00:52고 유경수 여사의 서거 당시 수가노사였던 이혜주 전 의원은 유경수가 서거하신 후에 유품을 정리하는데 한복 속옷을 보니까 이걸 기워 입은
01:05옷이더라고 이야기를 했고요.
01:07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은 본인 옷을 큰딸 박근혜 전 대통령에 입게 했을 정도로 검소했다.
01:15하와이 교민 행사 또 대학 졸업 때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입었던 옷은 어머니의 한복을 물려받은 것이다.
01:21박지만 이지 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남보다 좋은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가져본 기억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네요.
01:31서정옥 변호사.
01:32제가 유경수 여사 평전을 보니까 청와대 생활함 속에 좌우명이 3개가 있더라고요.
01:39하나는 열심히 공부하자.
01:41둘째는 많은 사람을 만나 시중에 오가는 이야기를 듣자.
01:45세 번째가 청와대의 살림을 중유 과정 정도로 하자.
01:49중유 과정 정도.
01:52그러니까 아마 청와대에서도 정말 검소하고 소탈한 이런 이미지죠.
01:59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사적 공과가 많지만 유경수 여사에 대해서는 아마 보수 진보 불문하고 존경하는 분들이 많은 게 이런 청념 이런
02:09게 아닌가 저는 그렇게 봅니다.
02:10그런가 하면 아까 말씀드렸듯이 딸 옷 본인의 옷은 기워입고 딸은 옷을 물려주고 본인은 또 유독 돈을 아끼지 않았다고.
02:22저렇게 한복. 저 한복이 1973년에 하와이 이민 70주년 교민 행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당시입니다.
02:34저 한복이 어머니 유경수 여사로부터 물려받은 한복이라고 합니다.
02:39저 옷이 좀 커 보이죠.
02:41유 여사가 조금 더 박근혜 전 대통령보다는 좀 컸다고 하나 봐요.
02:45그래서 옷이 조금 커 보이는 이유가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02:50옛날 모습을 보니까 73년.
02:52지금으로부터 제가 태어난 애네요.
02:55그 당시 50년 전의 일이니까요.
02:57영상이 좀 새롭습니다.
03:00유경수 여사의 특활비 장부가 공개가 돼서 굉장히 화제가 됐었죠.
03:06김지육 대변인 7천 원.
03:08지금으로 보면 7천 원이 아니겠지만요.
03:10엄청 큰 돈이었겠습니다만.
03:12이때 이 출납 장부를 보면 72년 8월이에요.
03:17그러니까 매일 이렇게 출납 기록부를 썼는데 청와대 주방 아주머니 옷 지어줄 것을 지시했다.
03:23이렇게 옷감, 대 이렇게 써 있습니다.
03:26그렇습니다.
03:27그 유경수 여사는 상당히 근검 절약이 몸에 배웠던 것 같아요.
03:33특히 가계부라는 정도는 금전출납부라고 하지만 저희가 집에서 개의적으로 쓰면 가계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03:40요즘에도 저런 걸 적는 분들이 종종 계시긴 합니다만 본인이 생활을 어떤 규모로 운영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한눈에 알 수 있는 그런
03:51건데
03:52저기에 보면 다른 부분들은 다 이렇게 굉장히 근검 절약하는 부분들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요.
03:59그런데 여기에 청와대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한 부분이 있죠.
04:077천 원, 당시로 아마 치면 7천 원이 굉장히 적지 않은 돈이었을 겁니다.
04:12그 돈을 들여서 옷을 지어드려야 되겠다라고 생각하는 모습들.
04:18남에게는 인색하지 않고 자신에게는 인색했던 그런 모습들이 평소에 몸에 배어있는 생활 습관이셨다라는 것을
04:28우리가 저 특활비 집행내역서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04:32유교사의 특활비는 당시에 매달 20만 원 정도였습니다.
04:36빈민과 고등학생, 고학생, 사회단태증에 기부를 했고
04:40옷값, 본인들의 옷값, 이거는 남편 월급으로만 충당을 했다고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04:47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04:49그런가 하면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머니 유경수 여사를 청와대 내 야당, 청와대 신문고 이렇게 평가를 했습니다.
05:01관련된 발언 들어보시죠.
05:03내가 유일한 야당이다 이걸 자처해본 일도 없고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데
05:08그거는 오로지 대통령께서 붙여주신 거예요.
05:14이렇게 손님들하고 환담을 하시다가도
05:17그 여기 지독한 야당에 앉았으니까 말 조심하라고요.
05:21농담 삼아서 이런 얘기를 자꾸만 하시다가 그 얘기가 아마 밖에까지 새 나온 것 같아요.
05:26국민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기 때문에
05:31국민들의 여론이랄지 생각하고 있는 말을 대통령께 많이 말씀드릴 수가 있겠죠.
05:39저렇게 청와대 내 야당을 자처했지만
05:44유 교사는 하루 종일 피로에 지친 그분 따뜻하게 위로하지 못하고
05:49마음 아픈 여론 얘기해야만 하는 나 자신이 때로는 회의스럽더라
05:53가장 큰 위의한 자가 돼야 할 아내였지만 그렇게 못했다
05:58이 말 어떻게 들으세요? 성규 친구 대부분
06:00우리가 아까 봤던 영상은 이제 가로하고 72년으로 나와 있습니다만
06:05박정희 전 대통령이 첫 번째 대통령에 당선됐던 게 63년이잖아요.
06:10그때 교육수요사가 그 이후에 인터뷰한 내용들을 보면
06:14가장 안에서나마 계속 야당적인 자세로 진정한 민의를 폭넘게 받아들여
06:18진정한 여론이 무엇인지 항상 살펴서 얘기하겠다.
06:21처음 당선된 첫 해의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셨다는 거예요.
06:25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할들을 하셨기 때문에
06:27그 이후에도 계속 저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런 이야기들도 모르겠습니다.
06:31농담쪼로 하셨겠지만 그게 뭐 뼈 있는 말이었겠죠.
06:35진짜 가정 안에서는 유경수 의사가 좀 따끔한 이야기도 하고
06:38박정희 전 대통령 그 당시에는 사실 야당이 목소리를 내도
06:42잘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사항이었잖아요.
06:44그렇지만 집안에서만큼은 그런 따끔한 목소리를 내주셨고
06:48우리가 또 앞서 다룬 이슈에서도 근검 절약을 하는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에
06:52저는 아까 서정욱 변호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06:55유경수 여사만큼은 진보 보수할 것도 없이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분이고
07:00유경수 여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저는 안 좋은 이야기나 안 좋게 평가하는 건 저도 못 들어본 것 같아요.
07:04그렇기 때문에 저런 모습들을 보이셨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07:09그러다 보니까 이 영화가 더욱더 논란이 됐던 것 같습니다.
07:14유경수 여사가 서거할 때까지 지금 거리에서 보좌했던 당시 비서관의 목소리 들어보시죠.
07:45저렇게 운구차 뒤에서 슬피 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을 기억하는 많은 국민들
07:51이번 영화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지만
07:54뒤에 중정이 있다?
07:56그 뒤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그런 어떤 여러 가지 의혹 때문에
08:02영화를 보기 불편했다는 분들도 계신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08:06박정희 전 대통령이 여름마다 가족들과 함께 저도를 갔습니다.
08:11대통령의 휴양지가 있는 곳이죠.
08:14그런데 74년에 유경수 여사가 서거한 뒤에는 유경수 여사는 갈 수가 없었죠.
08:20가서 저도의 추억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08:241년 만에 찾아온 저도섬에는 매미와 물새들이 옛 주인을 반기는 듯
08:29성하의 태양이 백사장의 팽배 친이 은빛같이 쏟아져 눈부시게 반짝이고
08:35쭉 가다가요.
08:37올해도 또 찾아왔건만 어이 된 일일까 그대만은 오지를 못하였으니라고 시를 남겼습니다.
08:45이현정 의원님.
08:46당시 70년대, 60, 70년대 보면 대부분 개발도상국들 중에서는 대부분 독재국가가 많았습니다.
08:54그런데 독재국가 중에서 이렇게 선진국 반열에 올라간 나라는 아마 싱가포르가 저희 나라밖에 없을 것 같아요.
09:02그만큼 독재 정권, 군부 정권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그 정권을 맡은 사람이
09:09얼마만큼 국가를 위해서 자신의 개인 이익보다는 투자를 했는가.
09:14거기에 따라서 나라의 운명이 다 바뀝니다.
09:16그런데 우리나라 박정희 대통령은 보면 결국 유경수 여사가 브레이크 역할을 많이 해줬던 것 같아요.
09:22그런데 이 정권이라는 게 권력을 잡으면 뭔가 부패도 하고 폭주도 하고 이렇게 하지만
09:28유경수 여사 계셨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도 계속 하루에 매일매일 보면서
09:33그 브레이크 역할 그리고 또 많은 어려운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09:38나름대로의 어떤 중심을 잡고 국정운영을 해왔던 그리고 이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워낙 소탈하게
09:45하셨기 때문에 그런 게 있었지만 그나마 바로 74년도 저 파리로 때 저 사건
09:49이런 이유로 박정희 대통령은 굉장한 외로움에 시달립니다.
09:53그러다 보니 이제 술자리가 많아지고 또 그러다 보니 어떤 마음의 중심이 이루어지고
09:58그러면 또 쓴소를 하는 사람이 없어져요.
10:00왜냐하면 자기 부인이 쓴소를 하면 아무런 어떤 사심 없이 받아들이지만 그러나 다른
10:05참모들이 쓴소를 하면 혹시 나를 반대하고 저항하나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는
10:10거거든요. 저도의 추억이라는 게 아마 기억나실 겁니다.
10:23저도의 추억이라는 걸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10:28아마 저 여러 가지 어떤 망감이 교차했을 겁니다.
10:31즉 아버지가 이제 어머니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내려와서 정말 저도에서 유일하게
10:37가족들이 보낼 수 있었던 그 시간 아니겠습니까?
10:39그런 것들을 아마 추억하면서 저 글씨를 썼는데 살참 안타까운 게 결국은 이 유경수
10:45여사의 어떤 죽음으로 인해서 결국 박정희 대통령도 평정심을 잃어버리고 그리고 79년도에
10:5212.6 사태의 어떤 그런 이역이 있듯이 결국은 가장 대한민국이 정말 역동적이고 발전했던
10:59그 시절이 유경수 여사가 돌아가시기 전 직권 이후부터 거기였고 그 역할에는 사실
11:06유경수 여사께서 그냥 당시 대통령 부인으로서 역할을 넘어서는 굉장히 저는 중요한 정치 개입을 하지
11:13않으면서도 정말 어떤 쓴소리를 하고 역할을 했던 것들이 큰 보탬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11:19예 지금은 대통령 가족들이 같이 사는 경우가 많지 않죠. 부부만 사는 경우가 많죠.
11:26예전에는 박지만 또 박근혜 박근영 이렇게
11:31박정희 대통령 부부와 함께 다섯 가족이 함께 청와대에 사는 모습들이 사진으로 많이 공개가 됐었죠.
11:39그 사진을 볼 때마다 참 화목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11:44또 박근혜 두 부부 사이에 사진을 찍고 서로 테니스를 치고 운동하고 이런 사진들도 많이 공개가 됐습니다.
11:52그것을 보면서 많은 가족들이 또 많은 부부들이 우리도 저렇게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12:00저런 사진들을 서로 찍어주기도 하고요. 저런 사진들이 많이 공개가 됐습니다.
12:04사실 유경수 여사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꾸준히 회자되는 이유 또 있습니다.
12:09화면으로 직접 만나보시죠.
12:34아픈 환자들이 잊을 수 있겠군요.
12:37특히 이런 것은 원호병원 같은데
12:39장기 치료가 필요한 이런 병원이 참 더러운 일이 필요하더군요.
12:44양지회에서는 유서 깊은 경회로에서 최혜민 국호를 위한 자선의 밤을 열었습니다.
12:51이재미를 돕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모여 유경수 여사를 비롯한 전 회원들이 이 바자회를 직접 주대한 것입니다.
12:59좋은 일을 참 많이 했던 유경수 여사였습니다.
13:02아들인 박지만 회장이 기억하는 어머니.
13:04항상 모든 일에 어머니도 보고 계실 것이다 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13:10서로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를 넘어서 존경하는 사이였다라고 아들은 기억하고 있고요.
13:15어머니가 나 환자들 만나고 온 날 너희 엄마 정말 대단해 라고 하면서 자랑스러워했다고 하고요.
13:20청와대에서 성년회가 열릴 때 영부인은 안 왔다고 합니다.
13:24어디 가셨냐고 다들 물어보니까 봉사활동 갔어 이렇게 얘기할 정도로
13:29유경수 여사 참 많은 즉 기억해보면 그 어린이 회관인가요?
13:34그 어깨동무 그 잡지도 유경수 회사가 발행인이었던 것 같아요.
13:37그런 것 같습니다.
13:39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많은 국민들께서 유경수 여사에 대해서 단 한 사람도
13:47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얘기하는 것.
13:50그것이 지금 유경수 여사를 추모하는 수십 년이 지났어도 지금 추모하는 그런
13:56동력인데 저는 유경수 여사가 가장 이상적인 영부인 상을 만드셨다라고 하는 표현이 좀
14:05맞아 보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14:08대통령은 국정의 중심입니다.
14:11그러나 영부인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고 많은 분들이 봤을 때
14:16유경수 여사처럼만 하면 될 것 같다 라고 얘기하시는데
14:21그 가장 첫 번째가 애민정신이 아닌가.
14:25남편이 손을 다 쓰지 못하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14:31봉사하고 그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보여줄 때
14:37그것이 국정의 작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영부인으로서의
14:44자세가 아니셨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유경수 여사의 저 따뜻한 마음가짐 애민정신
14:50이런 부분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지시는 대통령과 또 그 부인이신
14:59영부인께서 가져야 할 자세로 본보기가 됨에 조금 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15:04유경수 여사 1974년 8월 15일 한여름에
15:09서거하셨는데 그 직전 여름까지 계속해서 봉사활동을 했던 그런 영상들이
15:15지금도 많이 회자가 되고 있습니다.
15:17서쪽 변호사 이런 얘기도 있더군요.
15:19시크릿이라고 비밀이라고 되어 있는데 나중에 공개된 거예요.
15:22이게 미국 문서를 통해서 공개됐는데
15:27박정현 전 대통령이 수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하야를 권유했다.
15:33아내 떠나고 100일 동안 내가 만약 이 조언을 들었더라면 내가 그때 더 오랫동안 권자에 앉지 않았더라면
15:42아직 유교사가 살아있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하네요.
15:50그렇죠.
15:51그만큼 너무 비통한 죽음에 대해서 슬퍼니까 차라리 내가 하야 하더라도 유경수 여사 살아계신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한탄이거든요.
16:02따라서 저는 이걸 보면서 이번 영화 있잖아요.
16:06정말 이게 표현의 자유와 영화적 상상력의 한계가 있는 거예요.
16:11우리 헌법 21조 사항에 보면 표현의 자유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수는 없는 거예요.
16:19표현의 자유라는 게 우리 손을 마음대로 흔들 자유인데 상대의 코앞에서는 멈춰야 되는 거예요.
16:25이 영화는 제가 보기에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섰고요.
16:29저는 아마 법적으로도 지금 손이 붕괴증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지금에도 상령을 중지하는 게 맞다 이렇게 봅니다.
16:37예 많은 분들이 유경수 여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16:44예 앞으로 이 논란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조금 더 지켜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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