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26년 전, 2000년도 오늘 11월 8일에는 대우 자동차가 최종 구도 처리된 날입니다.
00:10한때 재계사열 2위까지 올랐던 대우 그룹이 또 세계 경영을 외쳤던 김우중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 건데요.
00:16왜 그랬지 않을까요?
00:18생전 김우중 회장의 모습을 먼저 보고 오시죠.
00:33우리 젊은이들이 대외로 많이 얻어 나갈 수 있도록 성심, 성심껏 도와주려고 합니다.
00:43도시는 좁아도 비코의 길은 넓다.
00:46손님, 차려주셔야죠.
00:51흔들림이 없다.
00:53쉿, 레간자.
00:58저 광고 참 오랜만에 봅니다.
01:00이현정 의원님, 벌써 대우 차가 부터 처리된 지 26년이나 됐습니다.
01:052000년, 그때 참 외환위기 직후였던 것 같은데.
01:08사실 대우가 르망도 있었죠.
01:11티코도 있었죠.
01:13누비라, 레간자.
01:15한때 현대차를 제치고 국내 판매량 1위를 차지했을 정도의 정말 대단한 겸안이었습니까?
01:19그렇습니다.
01:20지금 레간자 보니까 참 옛날 생각이 화나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누비라, 라노스 이런 것들은 굉장히 인기가 있었던 작동입니다.
01:28지금도 사실은 김우중 회장 같은 경우에 유럽, 동유럽 쪽에 가면 여전히 대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01:35그리고 대우맨들이 여전히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01:38대우 종합 상사 유명했죠.
01:39그렇죠. 그만큼 우리나라의 어떤 도전적인 어떤 기업가 정신, 그걸 대표한다고 할 수가 있겠는데 물론 IMF가 오면서 굉장히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그룹이
01:50해체되긴 했지만 정말 대한민국의 어떤 기업가 정신, 그런 부분들에만큼은 김우중 회장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02:00박기태 변호사. 사실 대우차, 대우 자동차, 대우그룹이 전자두에 있었고 여러 계열사들이 참 많았습니다만 저렇게 자동차에 굉장히 집중을 했고 세계 공장을
02:12많이 인수했잖아요.
02:13저렇게 차에 승부를 걸었던 이유가 뭡니까?
02:17일단 간단히 생각하실 수 있는 게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겁니다. 자동차라는 것은.
02:21지금 도요타 자동차 같은 경우에 일본 시청에서 거의 1, 2위를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02:27그리고 단순히 그래서 삼성자동차도 삼성이 끝까지 그렇게 전자를 갖고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자동차를 끝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02:34하고 싶어 했죠.
02:35실제로 했고요.
02:36그래서 삼성자동차를 만들 정도로 그렇게 자동차가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인데 이 자동차에서 완전히 승부를 보려고 한 겁니다.
02:43그래서 사실 우리 북방정책 이런 거와 함께 동국권에 진출을 해서 굉장히 많은 공장들을 인수를 했고
02:50폴란드에 굉장히 큰 공장도 인수를 하고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어서 실제로 대우차가 과거에는 오펠이라든가
02:57그다음에 티코 같은 경우는 일본 스집기차인데 이런 차들을 갖고 와서 만드는 차에서 직접 개발하고 직접 생산해서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이 되려면
03:05우리는 자동차에 집중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했던 걸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03:09사실 이 티코아는 기름 냄새만 맡아도 차가 간다고 할 정도로 굉장히 작지만 국민차로 불렸습니다.
03:18참 많은 차들이 이렇게 출시가 됐어서 98년까지 출시가 되다가 결국 2000년에 최종 부도 처리가 됐는데
03:25저희가 김우중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자서전도 있었지 않습니까?
03:33세계 경영을 선언한 게 1993년입니다.
03:36하지만 97년에 외환위기 경영난이 심화됐고
03:4199년 6월에 뭔가 변화를 주기 위해서 대우와 삼성 간 빅디를 추진했는데 무산됐다.
03:49이게 어떤 말이죠?
03:50이게 일단 대우 같은 경우에 IBF로 많은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03:55더 공격적인 경영을 하겠다. 이렇게 해서 쌍용 자동차를 인수를 했습니다.
04:01그리고 그 외에도 굉장히 공격적인 차입 경영들을 했어요.
04:05그래서 보시면 97년에 43조 원이던 부채가 98년 말에는 60조 원까지 17조 원이나 늘어났습니다.
04:12이게 지금 17조 원이라도 어마어마하게 큰 돈인데
04:15당시에 17조 원이나 늘어날 정도로 사실 너무 공격적인 경영을 하다 보니까 부채 상태가 안 좋아진 거죠.
04:21그래서 삼성과 빅딜을 하자고 얘기가 나왔습니다.
04:24빅딜이라는 게 차를 대우가 갖고 오고 대우전자는 삼성에 주고.
04:29맞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큰 회사였거든요.
04:31탱크주의 이런 걸로 유명한 대우전자를 삼성에 주고 삼성, 이제 막 시작한 삼성 자동차를 갖고 오는
04:37그런 계약이었는데 그래서 MOU까지 체결을 하고 실질적으로 실사까지 나왔다고 했는데
04:42마지막 단계에서 무산이 된 겁니다.
04:45그리고 정확히 왜 무산이 됐는지 어떤 이유에선지 설은 많아요.
04:49삼성 자동차를 너무 안 쳤다.
04:51그리고 제일 유력한 설 중에 하나가 대우전자가 까보니까 부실이 많았더라.
04:55여러 가지 얘기는 있으나 결과적으로 빅딜이 무산이 되면서
04:59대우차가 사실상 실제 부도로 완전히 접어들게 되었습니다.
05:04참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05:06이현정 의원님.
05:06사실 좀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잖아요.
05:11나가 있었잖아요.
05:12본인은 주장하기에는 김재경 대통령이 좀 나가 있어라라고 했다는데 거기에 대해서 청와대는 부인한 적도 있고요.
05:20참 당시에 이 대우그룹의 해체를 놓고서 여러 가지 썰이 많았습니다.
05:26사실상 이제 재정적인 규모로만 보면 대우가 어떤 해체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당시에 이제 재벌들 간에 어떤 빅딜이 있었어요.
05:36LG 같은 경우도 반도체를 넘기고 등등 여러 가지 빅딜을 통해서 했는데 문제는 이제 김우중 회장이 당시에 정권에게 좀 밑보였다.
05:44그리고 당시 경제팀과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05:47이런 것 때문에 의도적으로 지금 대우그룹을 해체한 게 아니냐.
05:50뭐 이런 썰들이 있습니다마는 당시에 이제 아무래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워낙 규모가 큰 재정 적자가 있었으니까.
05:58이제 그런 어떤 점들이 고려될 것 같은데.
06:00문제는 이제 김우중 회장이 그때 뭐 구속도 되고 저도 그때 이제 제가 검찰 출입할 때인데 직접 그때 이제 출동하는 것도
06:06봤고 하는 상황이었는데 결국은 나중에 출감하고 나서 결국은 베트남 쪽에 이제
06:14인거지를 말해서. 역시 이제 뭐 부동웅이라고 할까요 쓰러지지 않는 그런 어떤 측면에서 계속적으로 본인도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마는 결국은 이제 뭐
06:23꿈을 이루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06:25박기태영 의사 만약에 대우그룹이 지금까지 건재하다면 현대대 대우 양강 체제가 됐고 또 자동차도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06:36해봅니다.
06:37저도 굉장히 아쉬운 게 저희 제가 처음 탔던 어머니 첫 차가 대우 르마앙이었거든요.
06:42그래서 약간 스타일로 나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06:45좀 무난한 현대 기술의 기아 튼튼한 대우.
06:47그래서 이 굉장히 큰 기업이고 저도 또 사실 학교에서도 김우중 기념관 대우관에서 공부를 하기도 해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만 어쨌든
06:56굉장히 추징금의 경우에 보시면 이 분식회계의 규모가 전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할 정도로 많았거든요.
07:0440조 원 상당의 분식회계가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07:07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남기가 좀 쉽지 않지는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07:13참 아쉽습니다.
07:15또 많은 대우인들이 저때 참 어려움을 많이 겪었었는데 오늘로써 26년 최종 부도 처리됐던 대우 그룹의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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